1서울대학교 간호대학, BK21 미래간호인재 양성사업단 대학원
2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간호과학연구소
3서울아산병원 간호부
1Graduate School, College of Nursing, Center for World-Leading Human-Caring Nurse Leaders for the Future by Brain Korea 21 (BK21) Four Project,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2College of Nursing, The Research Institute of Nursing Science, Seoul National University, Seoul, Korea
3Department of Nursing, Asan Medical Center, Seoul, Korea
© 2025 Korean Society of Nursing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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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가족들 식사준비를 위해서 가스 불을 점화했는데, 이미 가스줄에 가스가 새고 있었고, 그게 터지면서 몸에 불이 붙어서 전신 85% 화상을 입었어요. 속옷을 입어서 가슴과 같은 이런 중요 부위만 제외하고 전신 화상을 입었어요. 가족들은 다행히 그때 방에 들어가 있어서 괜찮았죠. (영신, 참여자 4)
지하 방에서 가족이랑 살았는데, 부엌 쪽에서 화재가 났어요. 그때 엄마는 신고하려고 그 부엌을 지나가다가 심하게 화상을 입으셨어요. 아버지는 저를 이불에 감싸고 안고 계시다가 연기에 질식하셨고요… 저는 어렸을 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공간인 집에서 불이 났다는 트라우마가 있어요. 이후 가족이 해체되고, 살 곳이 없어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고시원에 있었어요. (아인, 참여자 2)
통증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매일 드레싱 받으러 가는데, 딱 생지옥으로 가는 느낌. 죽기보다 싫거든요. 소독 받다가 몇 번을 까무러쳤는지 몰라요. 하루만 안 해도 몸에서는 너무 심한 냄새가 나는데, 그 악취보다 치료받는 게 더 싫었어요. 죽는 게 더 나았을 정도로요. (복희, 참여자 6)
사춘기 시절 3주에 걸쳐서 수술을 하다 보니 생리할 때 수술하는 경우도 있었고, 화상 피부 이식을 해야 하니깐 옷을 다 벗고 들어가야 되고. 그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제일 고통스러웠던 건 온몸이 간지러웠던 거…. 수술하다가 심장도 한번 멈췄다고도 했어요. 그때 공포와 두려움이 여전히 생각나요. (경동, 참여자 7)
내 얼굴을 거울로 보니 머리카락은 하나도 없고, 양팔도 다 붙어버리고, 밥을 먹을 때도 두 번 먹고 쉬어야 될 정도로 힘도 없었고요. 더 이상 여자로서 살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그래서 시간만 있으면 죽으려고 하는데 움직일 수 있어야지. 움직일 수도 없는 거예요. (노연, 참여자 3)
사고 후 처음 거울을 봤는데 눈썹도 다 타버려서 없고, 말 그대로 너무 흉측한 거예요. 소리도 안 나와요. 아무 소리 없이 멍하게 있다가 울고, 퇴원할 때는 멀쩡하게 나갈 수 있겠지. 고통스러운 치료만 끝나면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아인, 참여자 2)
퇴원 후 외부와 단절한 생활은 3–4년 정도였고, 침대에 누워서 죽을 생각만 했어요.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지요… 숨이 붙어있으니깐 그냥 사는 거지. 죽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는데 자살 시도는 못 했어요. 살아있어도 내가 어떻게 하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영신, 참여자 4)
사회로 나오는 데 7년이 걸렸어요. 너무 아프니깐 옷도 못 입고, 나쁜 선택도 여러 번 했어요… 집에 있으면서 혼자만의 시간 동안 비관적인 생각이 쌓였어요.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겼지?’라는 생각들로 가득 찼어요… 한 번은 재단 후원을 받아서 미국을 갔는데, 미국에 있는 여성 화상 생존자들도 세상 밖으로 못 나오는 분들이 많은 거예요. 여성 화상 생존자들이 사회 밖으로 나오기 힘든 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둘 다 어렵다고 그때 알았죠. (다정, 참여자 5)
지금도 정신과를 다니는데, 딸각 소리 나는 가스레인지가 무서워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았고, 지금도 꾸준히 약을 먹고 있어요… 식당을 가더라도 가스가 없어야 해요. 가스가 터질 거 같으니깐 집 안 부엌을 지금도 못 들어가요. 가스가 언제든지 터질 거 같은 느낌… 집 안 가스레인지 자체를 아예 그릇으로 덮어놓고, 안 보이게 하려고 주위에 잔뜩 물건을 쌓아놓고 살아요. (노연, 참여자 3)
소독 당시 진물들이 뜯겨 나가면서 너무 아프니깐 소리 지르고, 기절하기도 하고. 그게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속에 남아 있나 봐요. 제가 자다가 비명을 지른다고 하더라고요. 가족들과 같이 자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다시 잔대요. 아무래도 당시 치료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여전히 몸이 기억하지 않나 싶어요. (아인, 참여자 2)
저는 평생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평생 자신이 없었죠… 저랑 제일 친한 친구인데 친구 결혼식 때 저는 머리에 엄청 큰 물주머니를 차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단체사진도 같이 못 찍었어요. 그건 마음이 조금 아팠던 것 같아요. 걔는 가장 화려하고 예뻤던 그 시절.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항상 외롭고 처절했어요. (경동, 참여자 7)
여자는 예뻐야 하잖아요. 결혼도 해야 되고, 그 흉터를 누가 안고 가요. 어느 남자가 정말로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살아주겠냐고. 세상에 절반이 여자인데… 결혼을 못할 것 같았어요. 나의 이 모습을 누가 책임을 질 수 없을 것 같으니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 그래서 엄마랑 형제들에게 무게를 싣지 말자. 그래서 유아교육과를 야간으로 가게 되었어요. (창연, 참여자 1)
화상 후 남편은 시댁에 살고, 저는 친정에 가 있고. 몸과 거리가 멀어지니 남편이랑 멀어지더라고요… 화상 자조모임에 오랫동안 나오면서 느낀 것은 남성 화상 생존자는 아내와 거의 안 헤어져요. 그런데 여성들은 남편과 많이 헤어지더라고요. 화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보니 화상에 대한 배우자의 거부감이라고 생각해요… 알고 지낸 여성 화상 생존자도 집안 반대로 결혼을 못했고, 결국 헤어졌어요. 여자니깐 그러더라고. 여성들은 남자들에 비해서 확실히 다른 거 같아요. (다정, 참여자 5)
화상으로 인해 옆구리가 당기니까 임신하면 산모도 위험하고 아기도 위험하다고 하더라고요. 화상으로 독한 약도 많이 쓰니까. 여자로서 기능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많이 내려놨죠.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기를 갖고 싶어도 포기하게 되는 그런 것들이요. (아인, 참여자 2)
두 명의 자녀들이 제 대소변 다 받아내고, 시골이니까 애들이 연탄도 다 교환하고, 엄마 밥도 애들이 다 먹여줘야 했어요… 애들 입장에서는 가장 많은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인 초등학생 때 엄마로서 애들을 돌보지 못했잖아요. 그게 제일 미안했어요. (영신, 참여자 4)
사회는 아직도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하구나. 길을 갈 때도 “저게 여자야? 저런 것도 여자라고.” 이런 소리를 몇 번 들었어요. “쟤는 왜 길거리를 돌아다녀? 집구석에나 있지, 왜 다녀? 저것도 여자라고.” 이렇게요. 젊은 애들도 그러고, 연세가 드신 분들도 그러고요. 저희 아버지도 그런 부분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셨어요. 아들이 다친 것보다 딸이 다친 게 더 마음이 아팠다고 하더라고요. (아인, 참여자 2)
지하철에서 사람을 마주하면 움츠러들고 피했어요. 사람들은 제 손 같은 거 보면서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도 많아요… 사람들 시선이 따갑다 보니까 전철에 앉아있다가 내가 옆에 앉으면 막 도망가고, 목욕탕 주인이 다음부터 오지 말라고 하고요. 저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 놓친다는 거죠. (복희, 참여자 6)
화상을 경험한 남성분들은 일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 산재 처리가 많아요. 그런데 여성들은 부엌에서 집안일을 하거나 직업을 가져서 일을 할 때에도 취약한 곳에 일해서 산재 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정말 많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치료할 때 경제적인 거부터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모든 치료를 보상 없이 제 돈으로 해야 되었으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영신, 참여자 4)
당시만 해도 수술비가 워낙 많이 나왔어요. 비급여라서 이루 말할 수도 없었어요. 한 번 수술하면 1,200–1,500만 원 나오는 거예요. 내 살을 떼어서 그 화상 입은 부위에 붙이는데, 그렇게 비싼 거예요. 이걸 어떻게 감당해요. 그래서 겉에 상처만 없는 정도로 나은 상태에서 퇴원을 하게 된 거죠. 병원비 때문에 겨드랑이도 서로 다 붙은 상태에서 퇴원을 하게 되었어요. (다정, 참여자 5)
시간이 지나면 물렀던 부분들이 흉터처럼 단단해지고 피부들이 두꺼워지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두꺼워지고 단단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사춘기 때 정말 힘들거든요. 저도 겪어왔지만 그때 많이 힘들고, 왕따를 많이 당하고… 그 시기를 조금만 참으면 기술도 많이 좋아지고, 완전히 깨끗해지진 않지만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인, 참여자 2)
겉으로 보면 화상을 입은 모습으로 누가 행복하고 그러겠어요. 우리는 불이 제일 무서워요. 죽어서도 꺼지지 않은 불인 지옥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종교를 통해서 평안을 얻고 살아가는 제 모습을 보면서 같은 화상 동료들도 위로 받는 모습을 보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제가 처한 상황은 크게 안 바뀔지라도 이렇게 마음가짐이 변하니까 웃음도 생기고, 지금은 행복해요. (영신, 참여자 4)
저 마음 깊은 배꼽보다 더 깊은 곳에 응어리를 아직 가지고 있어요. 이 응어리가 숨어있다가 한 번씩 불쑥 올라오긴 해요. ‘내가 아직도 이러고 살아야 되나?’ 이런 응어리요. 이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요. 감정도 한 번씩 심하게 가라앉기도 하고요. 살다가 한 번씩 ‘이러고 사는 게 맞는 건가’ 이런 생각들이 들어요. 그래도 살아야 되는 삶이니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 응어리와 계속 같이 산다고 봐야 돼요. (다정, 참여자 5)
Conflicts of Interest
Heeseung Choi has been the Associate Editor of Journal of Korean Academy of Nursing since 2022 but had no role in the review process. Except for that, no potential conflict of interest relevant to this article was reported.
Acknowledgements
None.
Funding
This research was supported by the BK21 Four Project (Center for World-Leading Human-Care Nurse Leaders for the Future) fund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Korea) and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Data Sharing Statement
Please contact the corresponding author for data availability.
Author Contributions
Conceptualization and Methodology: RK, JSY. Data curation or/and Analysis: RK, IC, JSY, HC. Funding acquisition: RK. Investigation: RK, JSY. Project administration or/and Supervision: RK, HC. Resources or/and Software: RK, IC, JSY, HC. Validation: RK, IC, JSY, HC. Visualization: RK, IC, HC. Writing original draft or/and Review & Editing: RK, IC, JSY, HC. Final approval of the manuscript: all authors.
No. | Age (yr) | Period after the traumatic experience (yr) | Burn sites | Burn depth (degree) | Burn range (%) |
---|---|---|---|---|---|
1 | 63 | ≥30 | Face, trunk | 3–4 | 27 |
2 | 42 | ≥30 | Whole body | 3 | 80 |
3 | 73 | 20–30 | Whole body | 3 | 78 |
4 | 62 | 20–30 | Whole body | 3–4 | 85 |
5 | 53 | 10–20 | Whole body | 3–4 | 86 |
6 | 61 | ≤10 | Whole body | 3–4 | 70 |
7 | 53 | ≥30 | Face, arms | 3–4 | 27 |
Main themes | Subthemes |
---|---|
Unforeseen catastrophe | A life devastated by fire in the midst of ordinary life |
Excruciating pain in a living hell | |
Distorted reflections of self in the mirror | |
Burn scars encroaching upon daily life | Isolated moments teetering on the edge of death |
The unending pain of the past | |
Navigating life as an incomplete woman | Renunciation of aesthetic ideals |
Estranged marital relationships | |
Lost maternal roles | |
Exclusion from social integration | Critical gaze in an appearance-oriented society |
Being overlooked in compensation systems | |
The meaning of life deepened by suppressed pain | A heart toughened like a scar hardened over time |
Entrenched resentment and lingering emotional wounds |